조선시대 보기 드문 명판결

최근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 ‘조선시대 보기 드문 명판결’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해당 게시글은, 조선시대 있었던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판결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그 사건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조선 초기 ‘서달’이라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가 있었다.

외동아들인 그는, 귀하게 자란 탓인지 거만하여 항상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어느 날 서달은 본가의 어머니를 모시고 충남 온양 온천을 갔다.

휴향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지금의 아산시를 지나게 되었는데,

서달의 무리 앞으로 조선시대 직급이 낮은 공무원인

아전 두명이 지나가게 되었다.

 

서달은 아전들이 예를 갖추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고 잡아오라고 명하였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아전들은 고을로 달아나 버렸다.

서달은 관리나 왕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전이 알 턱이 없어

예를 갖출 필요도 없었지만

거만하게 살아온 서달이 억지를 부린 것이었다.

 

아무튼 서달의 하인들은 고을을 이잡듯이 뒤지기 시작했지만

좀처럼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고을을 지나던 다른 아전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엉뚱한 아전에게 도망친 아전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추궁했다.

영문을 모르는 이 아전이 모른다고 답하자

서달의 하인들은 이 아전을 묶어놓고 매질을 하였다.

 

이 장면을 목격한 ‘표운평’이라는 또 다른 어전이

강력히 항의하며 말리자 표운평 또한 매질하며 추궁하였다.

그러나 영문을 알 리가 없는 표운평이 말을 잇지 못하자

서달은 표운평이 취한 척 하며 횡설수설 한다고 하며

몽둥이로 50대를 때릴 것을 명했고,

매질 이후 표운평은 다음날 죽어버렸다.

 

갑자기 억울하게 남편을 잃은 표운평의 아내는 관아에 이 사실을 고발하였다.

 

사건이 접수되자 대사헌이었던 감사 ‘조계생’은

조사관 ‘이수강’과 ‘조순’에게 조사를 맡겼다.

당시 상황이 정확하게 기록된 보고서가 조계생에게 넘어왔고

조계생은 이 보고서를 중앙의 형부에 전달하였다.

이 보고서가 제대로 처리된다면 서달은 중형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서달의 아버지 ‘서선’은 ‘서희’의 11대손으로

태종 이방원과 동문수학한 사이였으며 각종 벼슬을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심지어 서달의 장인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이라 불리우는

‘황희’였다. 사건 당시 황희는 좌의정을 역임하고 있었다.

 

서달의 아버지와 장인은 자신의 인맥과 권력을 동원하여

시나리오를 짜고 사건을 무마하기 시작했고,

표운평의 아내는 결국 합의서를 작성했다.

 

임금에게 올리는 최종 보고서만 보자면 이 사건은

하인 종놈 하나가 사람을 죽였고, 이에 사형에 처한다는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임금은 석연치 않은 낌새를 눈치챘다.

결국, 보고서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느낀  당시 임금

‘세종’은 형부를 불신하고 직접 의금부에 대대적인 재조사를 했다.

 

결국 사건의 전말은 밝혀지게 되었고,

이후
황희(좌의정, 서달의 장인) : 파면
맹사성(우의정) : 파면
서선(형조판서, 서달의 아버지) : 직첩회수
신개(형조참판) : 귀양
조계생(대사헌) : 귀양
안숭선(형조좌랑) : 귀양
이수강(온수현감) : 곤장100대 + 귀양
조순(전지직산현사) : 곤장100대 + 3년노역치 벌금
이운(직산현감) : 곤장100대 + 3년 노역치 벌금
윤환(목천현감) : 곤장100대 + 3년 노역치 벌금
노호(대흥현감, 서달의 처남) : 곤장90대 + 2.5년치 벌금
곽규(신창현감) : 곤장100대 + 3년노역
강윤(신창교도, 서달의 외가친척) : 곤장100대 + 3년노역
신기(도사) : 곤장 100대
서달 : 곤장100대, 3천리 귀양, 3년 노역치 벌금

라는 판결이 내려지며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이야기를 마친 글쓴이는

“일명 ‘서달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조선 초기 고관대작들이 국가 최고 권력을

이용해 민초의 죽음을 무마하려 했던 광범위하고

치밀한 권력형 비리 사건이었지만,

진실이 들어나면서 고관대작들이 한꺼번에

법의 철퇴를 맞는 유래를 찾기 힘든 희대의 사건이기도 하다. ”

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글을 끝맺었다.


한편 누리꾼들은

“왕이 훌륭해서 그렇죠 선조때  왕족 중 하나가
난리필때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었죠 직접지시
그리고 그걸 목숨걸고 수사한 변양걸이라는 관리는 귀향갔죠 찡긋><“
“세종은 진짜 대단했죠.
토지 세율하나 바꾸는데도 백성들에게 직접묻고
과반수가 넘게 찬성했는데도 백성들이 이해할 때 까지 다시 묻고…
근데 의외로 우리가 깨끗하다 생각했던 황희는
생각보다 청렴하지 않았다하니 아이러니한 일이죠.”
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고위 관직들의 부정부패와
만민 앞에 법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은
언제부턴가 ‘억울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불쾌한 진실’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조선시대, 계급사회와
인권 의식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이처럼 진실을 드러내고
고관대작들에게 법의 철퇴를 내리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최근의 부당한 현실과 비교되어
누리꾼들에게 ‘핵사이다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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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버 블로그 상실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