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개길과 필동철길이 만나는 을지로 사거리, 그곳이 곧 살아있는 역사다
서울 한복판, 정확히는 을지로3가와 을지로4가 사이.
지도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사거리 중 하나다.
조선 한양 시절부터 존재했던 ‘구리개길’과 ‘필동철길’이 만나는 지점.
400년 전의 도시구조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살아남은 흔치 않은 사례다.
구리개길은 원래 조선시대에 구리(銅)를 거래하던 길에서 유래된 이름.
이 길은 한양에서도 손꼽히던 번화가였고, 지금의 을지로 골목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수백 년간 서울 중심부의 중요한 교통축 역할을 해왔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역사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도 그 사거리의 형태와 골목 스케일이 조선시대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
현대식 빌딩 사이, 마치 시간여행 하듯 벽돌 골목 사이를 누비다 보면
“이 길이 진짜 조선시대 사거리였다고?”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구리개길 골목 끝엔 ‘석산정’이라는 한옥형 목조 문짝이 보존돼 있다.
이 문을 지나면 곧장 필동철길과 연결되며
서울의 오랜 옛길이 여전히 숨 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골목은 재개발 예정지다.
한때는 서울 도시계획의 기준점이 되었던 길이
이제는 개발 앞에 놓인 위기의 유산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지금이 중요하다.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낸 골목이 헐리기 전에
누군가는 이 골목을 걷고, 기억하고,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만약 당신이 을지로를 걷고 있다면
조용히 골목 하나를 꺾어, 구리개길 사거리를 찾아가보자.
그 길 위엔 아스팔트도, 콘크리트도 아닌
400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