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울린 박준 시인의 ‘유성고시원 화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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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 박준 시인의 베스트 셀러 시집 제목입니다.

시집 제목하나로 베스트 셀러가 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시 내용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시집 제목은 알고 있습니다.

이 시집에는’당신’ 즉, 미녀의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청춘을 위로하는 시들도 적잖이 있습니다.

 특히 ‘유성고시원 화재기’는 고시원에서 일어난 화재를 다룬 시로

청춘들에게 힘내라는 말보다 가만히 끌어 안아주며 많은 위로를 건낸 시입니다.


박준 -유성고시원 화재기

출입구 쪽 벽면을 제외한 삼 면이 옹벽 또는 내력벽으로 된 경우에도 가로균열은 사소한 겁니다.  ‘실내에서는 정숙해주세요’ 표어를 끼고 돌면 고시원 총무실이 있었죠

총무는 멸망의 법문들을 속기하고 있었습니다 느리게 발톱을 깎는 것은 일종의 예비행위로 보여지는바, 이 앞을 지나는 고시생들은 소음, 진동규제법 개정시행령을 되새깁니다

슬리퍼는 절대로 끌지 아니합니다

재산권을 일부 상실한 저의 호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는 누룩내가 났습니다 일몰 후로 기억합니다 저는 짐을 꾸렸습니다 이번 달은 창이 없는 호실로 갑니다

짐을 운반하는 도중, 과실로 법전 제27페이지 내지 제32페이지의 일부를 손괴하였습니다 접착테이프를 빌리러 총무를 찾아갔을 때 별다른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총무는 채점을 하다 말고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매년 이차에서 떨어졌던 그도, 탈출해 나왔다면 내년쯤에는 아마 이등병이 되었을 겁니다 그나저나 왜 결핍의 누대에는 늘 붉은 줄이 그어졌는지 알고 계실까요?

3층에사는 여자들이 이차를 마치고 돌아온 듯했습니다. 공동주방에서 부치는 달걀 냄새가 온 방실을 점유하고 있었죠 스탠드가 꺼지고 소방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습니다 누전이나 방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지 그동안 울먹울먹했던 것들이 캄캄하게 울어버린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중략-

위의 사람은 유성고시원 화재사건에 관하여 이와 같이 진술하는 바이며 진술내용이 목격 사실과 다를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감수하겠습니다.


때로는 지친 청춘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내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그대로를 안아주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지수 에디터 <제보 및 보도자료 https://woriclass.co.kr/ 저작권자(c) 우리학교클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