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만난 적군 부상병을 살려줬다가 평생을 후회했다는 군인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VC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받은 헨리 텐디(영국 육군)는 프랑스의 전장에서 한 독일군 부상병과 마주쳤음.

1

그는 그 부상병을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줬고, 독일 부상병은 텐디에게 묵묵히 감사를 표하고 그대로 사라졌음.

이일을 텐디는 잊고 있었고 그로 부터 20년후 그일을 기억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독일에 가서 히틀러와 뮌헨 협정을 채결하고 돌아온 체임벌린수상이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줬음

“내가 독일가서 히틀러만났는데 히틀러가 니 이야기 하더라? 니가 20년전에 자기 살려줬다고 안죽이고 보내줘서 고맙다고 전해 달라고 하던데?”

 

 

2

그가 20년전 안죽이고 살려준 부상병은 20대의 아돌프 히틀러였음.

그리고 2차세계대전이 벌어지자 1977년에 86세의 나이로 죽을때까지 히틀러를 살려준 자라는 낙인을 받고 살았고 그때 죽였어야 했다고 평생 자책하면서살았다고함.

인기 콘텐츠 이어보기~!

기병 17기에 보병 2천명이 패배한 전투

본래 기병 1기는 보병 8명에서 많게는 10명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상성상 보병이 기병을 이기기는 힘들다고 하지만, 기병 17기에 보병 2천명이 패배했다면 믿기시나요?

 

31

실제 송나라 기록인 ‘삼조북맹회편’을 보면 (1126년 2월 10일)

“2월 10일 병오일에, 하북로 병마 검할 이간이 병 2천으로써 금인 17기와 함께 싸웠는데, 패적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전투에서 승리한 금나라가 아닌 패배한 송나라의 기록이기 때문에, 승리자가 멋대로 부풀린 이야기도 아닙니다.

35

내용은 이렇습니다.

1126년 금나라는 송나라 수도 개봉을 공격하고 송과 금 사이에 강화협상을 체결합니다.

이후 금군은 강화협상의 급보를 기병 17기를 선발하며 황제에게 알리게 합니다.

금 기병 17기는 황제에게 전할 강화 체결 문서를 품에 지니고 북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송나라 장군 이간이 2000명의 보병으로 그들을 막았습니다.

금 기병들은 강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도중이라고 설명했으나, 이간은 말을 듣지 않고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시작된 금 기병 17기와 송나라 보병 2000명의 전투.

 

금 기병 17기는 좌(5) 중(7) 우(5) 3대로 전열을 정비해 쐐기모양으로 돌진하면서 송나라 보병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1234

수적으로 우세하여 기세등등 했던 송나라 보병들은 금 기병의 공격에 동요하기 시작했고, 대항도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2천 명의 군사 중 절반 정도만 도주해서 살아남고, 1천 명은 서로 깔려 죽거나 창이나 화살에 죽었습니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전투는 패배한 송나라의 기록이기 때문에 2천 명 이상이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32

또 이렇게 처참하게 패배하게 된 이유에는 송나라가 중국 왕조 중 가장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에 전문적인 병사가 없었고 무기 또한 열악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반면 금나라 기병들은 잘 훈련된 베테랑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