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부러진 나비를 직접 수술해준 디씨인.JPG

엊그저께 공원에서 나비 주웠다는 곤붕이다.

야외에서 나비를 관찰하다 보면 날개가 부러지거나 찢어져서

더이상 날지 못하고 죽어가는 나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텐데

그냥 죽게 내버려 두는 것도 물론 자연의 섭리이긴 하다만

살리고자 하면 살리지 못할 이유도 없기에

이렇게 나비 날개 고치는 법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나비의 날개가 망가졌다함은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눠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날개 일부가 부러진 경우

2. 날개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경우

3. 선천적 기형이나 우화 실패로 날개가 말려들어간 경우

오늘 소개할 방법은 1의 경우를 고치는 것으로

2와 3의 경우는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그때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환자와 막 조우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한 시민공원을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잔디밭 위에서 주황색의 무언가가 팔딱 거리고 있길래 뭐지 해서 봤더니 환자였다.

해당종은 암끝검은표범나비(Argyreus hyperbius)로 성적이형(Sexual dimorphism)이 크게 나타나는 종 중 하나인데,

이로 말미암아 볼 때, 환자는 암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본인이 해당 공원에서 몇 주 동안 관찰해본 바로는,

이곳에서 마주치는 암끝검은표범나비의 수컷과 암컷의 성비는 거의 8:2에 가까워서

해당 개체를 무사히 살려낸다면 이 공원의 암끝검은표범나비 개체수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수술을 위해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마시던 아이스티를 원샷 때리고 그 안에 환자를 모신 모습.

임시방편으로 이런 플라스틱컵에 환자를 담았지만 사실 이런 용기에 나비를 담아두면

흥분한 나비가 용기 내부에서 날갯짓을 하다가 날개가 용기벽에 부딪혀

날개를 더 찢어먹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닥 바람직하진 않다.

그래서 작은 지퍼백을 구해다 다시 환자를 담았다.

이렇게 지퍼백에 나비를 담아둔다면 날갯짓을 하다가

날개를 더 찢어먹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 이제 수술을 시작해보자.

수술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카드보드지

헌수건

베이비파우더(기타 입자가 고운 파우더류로 대체 가능)

순간접착제

굵은 철사(두꺼운 비닐 피막이 있는/세탁소 옷걸이로 대체 가능)

나무 이쑤시개

면봉

핀셋

환자의 모습.

네발나비과에 속하는 나비답게 다리가 네 개 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퇴화된 작은 앞다리 한 쌍을 볼 수 있다.

환부를 자세히 찍어본 모습.

10mm 정도로 크게 찢어져 있었다.

곤충의 날개에 있어서, 시맥(翅脈)은 날개를 지지하고 보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맥에 손상을 입은 곤충은 비행능력이 떨어지거나 사라지고 만다.

경험해본 바로는 나비들은 대개 앞날개 전연(앞가장자리, costa)에 위치한

아전연맥(subcosta vein)과 중실 상부를 감싼 경맥(radial vein)에 손상을 입으면 비행능력을 상실하는 듯 했다.

아무래도 비행 시 해당 부위에 부하가 가장 크게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환자의 환부를 표시해본 것이다.

해당 그림은 수술 이후에 그려진 그림이며 한국나비시맥도감(손상규著)을 보고 그린 것이다.

 

환부를 충분히 덮을 수 있는 크기로 카드보드지를 제단하자.

미리 카드보드지를 제단해놔야 수술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서

환자가 받게 될 부담 또한 줄일 수 있게 된다.

수술 직전 환자의 모습.

헌수건을 두툼하게 포갠 후

그 위에 환자를 올려놓고

굵은 철사로 사진과 같이 환자의 몸을 고정하고

환자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한 무게의 사물(본인은 수정테이프를 이용했다)을 철사 위에 올려 환자를 제압한다.

헌수건을 깔아둠으로써 환자가 철사의 하중을 완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날개에 접착제를 바를 때 혹시나 접착제가 새서 날개와 붙게 되더라도

다른 물질에 비해 쉽게 떼어낼 수 있기 때문에 헌수건을 사용한다.

환자를 고정할 때 환자의 다리가 꺾여있지 않도록 주의하자.

아무렇게나 대충 고정하고 수술해서 날개를 고쳐내도 다리가 부러져서

날개병신에서 다리병신으로 환부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날개와 뒷날개가 겹쳐있지 않도록 날개를 제대로 펴놓고 수술하도록 하자.

접착제 때문에 앞날개와 뒷날개가 붙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접착제를 붙이기 전에 날개를 정렬하자.

환자의 머리 위에 검은 종이 쪼가리를 올려둔 건

고인, 아니 고충(故蟲)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의지의 표상이 아니다.

이렇게 환자의 시야를 어둡게 하면 구속된 환자가 안정감을 느껴

‘덜’ 발악해서 수술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나무 이쑤시개에 접착제를 발라 날개에 접착제를 도포하자.

나무 이쑤시개를 쓰는 까닭은 우선 표면적이 작고,

소재 특성상 접착제가 발라져 있어도 나비 날개와 덜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단해놓은 카드보드지를 붙이자.

한 번 올리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업해야 한다.

카드보드지를 살짝 눌러 접착제가 카드보드지 부착면 전체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자.

접착제가 마를 시간을 충분히 두고 나서

수술 부위에 베이비파우더를 도포한다.

혹시나마 접착제가 덜 굳어있다면 날개가 반대쪽 날개나 뒷날개와 붙어버릴 수도 있는데

베이비파우더를 뿌리면 덜 굳은 접착제에 베이비파우더가 붙어 접착력을 제거한다.

베이비파우더는 잔여 접착제 때문에 날개가 붙어버리는 그런 사태를 방지하게끔 하는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면봉으로 베이비파우더를 다시 걷어주면…


수술이 끝났다!

수건 보풀이 살짝 붙어버려 눈에 좀 거슬리긴 하지만 비행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5분 내외의 수술이 끝났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수술 받느라 고생했을 환자의 영양을 챙겨주고 한숨 푹 재운 후

날이 밝으면 풀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우리의 환자는 무사히 날아 자연의 품으로 떠나갔다.

이상으로 부러진 나비 날개 수술기를 마치고자 한다.

대충 쓰고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 글 쓰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이 글을 읽은 곤붕이들 중 몇몇은 이제 더이상 다친 나비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길을 걷다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나비를 보면

집에 데려와 치료하고 배를 채워 다시 날려보내줄 수 있는,

그런 가슴 뜨거운 곤붕이가 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