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이들 반성하게 만드는, 건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한 남학생의 사연

cvwl-1lwcaa-yg_<출처:  SBS ‘리멤버’ 스틸컷(기사내용과 무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늘 부족함을 느끼고,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이들을 질투하기 바쁜 현대인들이 꼭 읽어봐할 사연이 등장했다.

25일 페이스북 건국대학교 대나무숲에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한 대학생의 속 깊은 이야기가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글쓴이 A씨가 직접 작성한 글이다.
돌이켜 보면 내 삶에는 객관적으로 불행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서만 자랐고, 어렸을 때는 샤워 시설도 없는 지하실에서 자라 잘 씻지도 못하고 학교에 갔었고, 그마저도 중학교 때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셔서 지하실에서 서럽게 울면서, 이제 우리 집은 돈도 없고 돈을 벌어올 사람도 없으니 돈을 아껴야겠다 생각하며 홀로 밥을 차려먹었던 기억도 난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때는 내내 아버지 병수발을 들곤 했다.

학교가 끝나면 내 주요 일과는 야자를 하는 것이 아닌 병원에 가는 것이었고, 그것이 싫고 짜증난다고 생각했던 철없는 고3 가을에는 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돌아가시기 전 실어증까지 걸린 우리 아빠는 그렇게 아들과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아버지가 남겨주신 재산 약 100만 원을 가지고 나는 서울에 올라왔다. 20년 간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자라온 나에겐 모든 게 너무나 생소했다.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났기에 집도 새로 구해야 했고, 휴대폰 요금, 전기세, 가스비 등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던 문제들. 전세, 월세, 계약금, 복비, 등록금, 생활비 등등…. 정말 많은 것들이 나에게 시련으로 다가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나의 기억 속에는 딱히 불행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비록 어머니는 없었지만 나는 자유로운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여행도 많이 갔고, 한 번은 무전여행을 떠났다 일사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아버지를 위해 사이다를 사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뱀도 처음 봤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다행히 나를 좋아해 주었고, 선생님들은 여러모로 불쌍한 나를 잘 챙겨주었다. 아버지가 출장가셨을 때는 가끔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그런 나를 챙겨주러 선생님이 우리 집까지 오셨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는 조금 힘들었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잘 자랐다. 아버지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농담으로 아빠는 언제쯤 안 아플 거냐고 물어보면서 웃었던 기억도 나고, 고집 센 아버지를 위해 먹지 않겠다는 밥을 차려드렸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가 왔는데 (솔직히 진짜 슬펐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주었기에 금방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20살이 되고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할 나이가 됐을 땐 정말 막막했지만, 돌이켜 보니 이것 역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아버지가 심어주신 꿈 하나로 대학에 들어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정말 운이 좋게도 장학재단에 접수했던 서류가, 봤던 면접이 잘 되어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의 배려로 인해 일하는 만큼 생활비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게 되어, 지금은 꽤 많은 돈도 모았고 이사도 나름 괜찮은 곳으로 갔다.

이렇게 항상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니 대학에 와서 만난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웃고 다니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정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고생을 모르는 것 같다고 말을 할 정도다. (이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조금 웃곤 한다.)

지금 다시 돌이켜 보면, 내 삶은 행복과 축복으로 가득 차있는 삶인 것 같다. 뭐 옛날엔 힘들었던 때가 있기도 한 것 같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이젠 잘 나지 않는다. 힘들 때 웃는 사람은 일류라는 말이 있다. 팍팍한 삶,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들 일류가 되었으면 좋겠다.

A씨가 말했듯이 객관적으로 바라본 그의 삶은 ‘불행’이라고 불릴 만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자신을 양육해줄 부모님의 부재 그리고 가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100만 원 남짓을 들고 상경해 생소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했고, 이는 시련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 A씨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스스로 잘 해결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기특한 것은 비록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불평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에게 주워진 작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알고, 이를 행복과 축복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을 본 누리꾼들 역시 “멋있어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 글” 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팍팍한 삶 속에 지친 당신에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아라.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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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출처 : 포스트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