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중에서도 가장 메이커 부대로 손꼽히는 백골 제 3보병 사단.
이 백골 부대는 한 사건으로 인해 북한의 인민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대가 되었다.
때는 1973년 3월.
강원도 철원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제 3보병 사단 백골 부대 장병들은 비무장지대 표지판 보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북한 측 초소에서 장병들을 향해 기습 사격을 개시, 3사단 소속 대위 1명과 하사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속히 작업을 중단하고 장병들은 사단으로 긴급히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시 사단장 박정인 장군은 해당 보고를 받자마자 강경한 보복을 명령했다.
사단장의 보복 명령을 받은 육군 제 3사단은 105mm 포 사격으로 북한의 초소를 명중시킨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은 박정인 장군은 더욱 강경한 보복을 할 것을 지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백린탄을 사용하기로 한 것.
살에 닿는 순간 타들어가 버린다는 악명 높은 백린탄을 제 3사단 장병들은 북쪽으로 발사한다.
어마무시한 백린탄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북한 인민군들은 약 30명정도 고통속에 몸부림치며 희생당해야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인민군들 사이에서 3사단 백골부대는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신하게 되었다.
이후 해당 사건이 국군 내부에 알려지자 당시 사단장이었던 박정인 장군은 1973년 4월 해임당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예비역으로 전역 조치되었다.
보복 사격 사건 이후 한달여 만이었다.
이후 2013년 7월 29일 박정인 장군은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괴뢰군은 몇 번이나 도발해도 그만인데 우리는 거기에 대응하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처벌하니 부대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느냐?”
그래서 내가 본때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사격을 하고 옷을 벗었다.
강하게 나가면 그들은 꼼짝 못한다.
적이 침범하면 즉각적으로 대응해 자기들의 책임 구역을 지켜야 한다.
국가가 준 무기를 가지고 국가가 준 부하들을 데리고 응징해야 한다. 그게 군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발생한 후 10여 년이 지난 1985년 9월 20일, 남북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의 자격으로 평양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함경남도 도민희 회장은 북한 정치보위부 고위간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함경남도 신흥군 출신의 박가 성을 가진 요란한 사단장 요즘 뭘 하오?”
비록 이 사건으로 보직해임 전역을 하게 됐지만 그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작전은 이후 전방에서 발생한 수없이 많은 북한군의 도발에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으로 대응했던 완전작전으로 전해지며 대한민국 육군과 백골부대의 전설로 알려졌다.
2017. 09 저작권자(c) 지식의 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