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 종현, 마지막 가는 길 배웅한 사람들

[리폿@현장] “그곳에선 행복하길”…故 종현, 동료들 눈물 속 영면

[TV리포트=김지현 기자] 반짝이던 별, 샤이니 멤버 종현이 영면에 들었다. 향년 28세. 눈물로 만들었던 음악들을 남기고 치열한 생을 마감했다.

21일 오전 9시 고(故) 종현(김종현)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발인식이 치러졌다.

고인은 동료들의 눈물 속에 먼 길을 떠났다.

상주는 샤이니 멤버 민호였다. 위패를 든 그는 비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샴켰다.

누나가 영정을 들고 뒤를 이었다.

남은 샤이니 멤버들과 이특, 동해, 은혁 등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관을 운구했다.

그 뒤로 지인들이 종현을 배웅했다.

동료들은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만 흘릴 뿐이였다.

슬픔에 젖은 통곡 소리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서로 차마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종현은 동료들과 1천여명의 팬들의 배웅 속에 장지로 향했다.

장지는 유족의 뜻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편히 잠들길 바랐기 때문이다.

종현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의 한 레지던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119구급대원들은 심정지 상태에 빠진 종현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사망했다.

경찰은 사인을 자살로 판명했다.

소속사는 “종현이 18일 사망 판정을 받았다”면서 “종현은 그 누구보다도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를 즐기며 음악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최고의 아티스트입니다”라고 애도글을 남겼고, 연예계는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빈소에는 보아, 김민종, 크리스탈, 설리, 소녀시대, 엑소, 슈퍼주니어, 레드벨벳, SM 수장 이수만 사장 등 소속사 식구들이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 밖에도 워너원, 빅스, 강호동, 이승철, 장현승, 준케이, 황찬성, 신세경, 방탄소년단, 뉴이스트W, 아이유 등 수많은 동료들이 함께하며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김재창 기자 freddie@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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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그계 최악의 똥군기 흑역사 사건.

김국진,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 이렇게 네 명은 1991년 KBS 대학개그제 동기로 감자골이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같은 기수 동기로 유재석, 남희석 등이 있음)

당시 KBS에서는 봉숭아학당으로 대표되는 캐릭터쇼나 심형래가 하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대표적이었고, MBC에서는 이경규, 주병진의 토크코미디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SBS가 개국했는데, SBS가 KBS 개그맨들을 좋은 조건으로 빼가자, KBS는 당시 신인이었지만 인기있는 감자골을 밀어주기 시작한다.

여기서 감자골 멤버들은 KBS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MC를 맡는 등 승승장구 했으며 같이 CF를 찍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감자골은 인당 방송을 10개씩 뛰어야 할 정도로 스케줄이 빡쌨고, 김용만은 과로로 입원하기도 했다.

감자골은 스케줄 조정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당시에 막강한 권한을 가진 PD들은 듣지를 않았다.

결국 열받은 감자골은 대장 김국진의 주도하에 1993년 1월 출연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한다.

이때 감자골을 데뷔한지 불과 2년차였다.

그러자 신입 주제에 벼락스타가 된 그들을 시기질투하던 선배들이 이를 계기로 똥군기를 잡기 시작한다. 지금은 다르지만 당시 코미디언계는 기합뿐만 아니라 손찌검도 하는 살인적인 군기가 횡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KBS희극인실의 최고참 임하룡은 똥군기를 잡는 선배들과 달랐다.

그는 “얘네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군대 갔다 온 성인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방속사 측에 항변한 것일텐데, 왜 우리 동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주지 못할망정 싹도 안 자란 아이들을 영구제명시키냐”면서 유일하게 감자골을 옹호했다.

군기가 살벌했고 당연하다 여겼을 그 당시 코미디계에서 임하룡같은 선배는 매우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건으로 감자골 멤버들은 KBS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오게 되고 감자골 멤버들은 이경규의 지지아래 당시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였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고별인사를 하고 미국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녹화가 시작되기 직전 “프로그램 10개씩 하던 감자골이 갑자기 그만 둔 것은 MBC로 이적하기 위함이였다!”면서 임하룡을 제외한 방송 3사 코미디언 모두가 녹화장에 쳐들어온다.

떼로 몰려온 그들은 난동을 피웠고 김국진은 스태프들을 따라서 개구멍으로 피신을 갔다고 한다.

여기서 이경규는 난동피는 선배 개그맨들을 막으며 “감자골은 이적하는 것이 아니고 코미디언으로서 은퇴하고 이민가는 방송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라고 했지만 줄빳다만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경규는 끝까지 선배들을 설득했고 겨우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감자골도 다행히 고별 방송을 할 수 있었다.

(신인시절 이경규는 자신에게 잘 대해주고 가장 친한 선배인 이홍렬과 사진을 찍었는데, 다른 선배들이 이를 괘씸하게 여거 코피가 날 정도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이유는 신인이 건방지게 선배와 사진을 찍어서)

그리고 이 사건으로 감자골은 KBS에서 짤리기 일보직전이 되었으나, 이경규가 선처를 호소해서 겨우 짤리는 것만을 모면했지만 방송 3사 코미디언 협회에서 제명당한다.

 

이후 김국진, 김용만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박수홍은 군대 영장이 날아와 입대를, 김수용은 비자 문제로 입국이 안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라디오스타에서 김수용은 비자 발급 인터뷰를 대충 읽고 마약 경험과 총기소지 상황문항에 예라고 체크하여 몇 년 간 입국 금지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년만에 귀국한 김국진, 김용만은 MBC에 자리잡았는데, 이때 이경규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특히 김국진은 대한민국 연예인 역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수많은 유행어를 양산했고 띠부띠부씰이 들어있는 국찌니빵은 월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부문별 인기순위.

개그맨 부문 1위인 김국진은 55%의 지지율을 보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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